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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의 반 타의 반 고전을 읽을 기회가 흔치 않다. 오래 전 이야기라 하니 웬지 지루할 것 같은데 줄거리는 대강 알고 있고, 찾아서 읽자니 의외로 구하기 힘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물며 전혀 생소한 SF 장르라면. 그래서 <죽음의 미로>를 골랐다. 미지의 행성 델멕-O에 모인 14명의 사람들. 행성이 어떤 곳인지, 자신들의 임무가 무엇인지도 모른다. 고립된 사람들 안에 불안이 퍼지기 시작할 무렵 한 사람씩 의문의 존재에게 살해 당하기 시작한다-는 책소개를 보면 SF 장르보다는 본격 추리소설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 만만치는 않았다. 애매한 문장으로 구성된 목차부터 쉽게 읽을 수 없을 거라는 느낌을 주더니 읽어갈 수록 목차와 전혀 무관하게 진행되는 전개에 계속 뭔가 찜찜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 뿐만 아닌다. 첨단 과학을 이용하여 신과 직접 소통하며 살아가는 미래 세계 모습부터 노우저 등 소소한 설정까지 배경을 상상해 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이 작품은 클로즈드 서클이라는 전형적인 추리소설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실제로는 종교적인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다. 조유신, 중재신, 지상을 걷는 자, 형상파괴자와 같은 낯선 종교적 상징도 익숙한 듯 낯선 듯 알쏭달쏭하다(해설에 의하면 기독교, 불교, 조로아스터교 등 대표적 종교를 섞어 작가가 재창조한 것이라 한다). 그래서인지 등장 인물이 사라질수록 범인의 정체보다 델멕-O라는 행성과 인간의 삶을 지배하고 조정하는 신의 존재에 대해 궁금해진다.

모두의 종말과 함께 혼란이 극에 달했을 때 나온 반전은 조금 김빠지는 감이 없지 않지만 한편으로 정교하게 짜여진 작가의 계산에 감탄하기도 했다. 가상의 미래를 소재로 삼고 있지만 이 작품을 관통하는 일관된 주제는 인간을 지배하는 신, 신-종교를 만들어낸 인간에 대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델멕-O의 사람들은 외부 세력의 음모가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낸 '죽음의 미로' 안에서 길을 잃은 채 사라져 간 것이다.

SF 문외한이라 할지라도 필립 K. 딕이라는 이름은 충분히 친숙하다. 마이너리티 리포트, 토탈 리콜, 페이첵, 블레이드 러너, 콘트롤러. 알게 모르게 많이 봤다. 헐리웃에서 그럴 듯한 SF물이라면 그의 작품에서 설정을 빌려온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헐리웃 SF는 설정의 재기를 제외하고는 그다지 끝까지 재미있게 본 작품이 적어 그에 대한 신뢰가 크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 작품을 보고 나니 필립 K.딕의 원작이 전형적인 헐리웃 영화가 아니라 헐리웃이 그의 원작을 헐리웃화 시켰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보는 내내, 다 읽고 난 뒤에도 사고가 한 뼘 정도 확장되는 기분. 이런 장르 소설의 재미를 자주 느끼고 싶다.

죽음의미로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 SF소설
지은이 필립 K. 딕 (폴라북스,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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